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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 엄앵란과의 결혼과 이혼,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불륜 등 할리우드급 인생사와 아들, 딸 자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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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여름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다고 알려졌던 배우 신성일이 느닷없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하지만 이건 오보였고, 그럼에도 현재 배우 신성일은 폐암이 악화되어서 많이 위독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중의 한 명이었던 배우 신성일인데요. 동료 배우 엄앵란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졸혼 등의 사연과 한 때 시끌시끌했던 고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불륜, 그리고 자녀 관계 등을 정리해보도록 할게요. 



먼저 배우 신성일의 간단 프로필부터 정리해볼게요. 배우 신성일은 1937년 대구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로 82세로, 굳이 비교하자면, 할리우드 배우인 모건 프리먼, 안소니 홉킨스, 잭 니콜슨, 더스핀 호프만, 워렌 비티, 빌 코스비 등과 동갑 나이입니다. 


경북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나왔고, 원래 이름은 본명이 강신영입니다. 좀 여자 이름같기도 해서, 배우 데뷔 당시 원로 감독인 신상옥 감독의 추천으로 예명을 신성일로 해서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신상옥 감독>


배우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간판 스타 배우로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깁니다. 


어떤 기록이냐면요. 무려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500편이 넘고, 신성일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만 해도 120명 가까이 되며, 신성일을 대한민국 영화계의 스타로 만든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은 당시 관객 수가 23만, 단관 개봉이었으니까 지금의 프랜차이즈 영화관 기록으로 치면 1,000만 영화는 당연한 기록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석규, 그 전에는 배우 안성기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원톱 배우를 경험해 본 배우였다면, 그 십 수년 전 한석규, 안성기의 위치를 이미 점했던 배우가 바로 신성일입니다. 


1960년대 조각 미남의 대명사로 한국의 알랑 드롱으로 불리며, 출연료로만 따져도 2위와 10배 가까운 금액 차이가 나는 흥행 배우였으며, 위에서도 말했듯 500편에 달한 영화 출연수는 사실 너무 많은 영화에 출연하다보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영화에 출연했는지 제대로 데이터베이스화가 안돼 대충 500편은 될 것이다는 식으로 어림잡은 것이니까 혹시 그 이상의 출연을 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죠. 


<신성일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 맨발의 청춘>


신성일은 배우 데뷔 이후 결혼도 빨리 한 편입니다. 자신의 대표작이기도 했던 영화 '맨발의 청춘'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엄앵란과 지난 1964년 결혼식을 올린 신성일인데요. 


당시에는 무조건 스타들 결혼식이라면 언론이고 일반인이고 몰려가서 구경하는 그런 식이어서, 신성일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무려 4,000명 이상의 구경꾼이 결혼식장 호텔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결혼식장 앞에서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는 암표장수까지 등장했고, 결혼식에 못 들여보내주냐며 일반인들이 항의를 하는 광경까지 벌어질 정도였으니까, 당시 신성일의 결혼식이 얼마나 큰 관심사였는지 상상이 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신성일의 또 다른 모습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인 신성일입니다.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지난 1981년 11대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이름을 강신성일로 개명한 것인데요. 


왜냐하면 위에서도 얘기했듯 정치인은 본명을 써야 하는데, 강신영이라는 본명을 쓰니까 배우 신성일인줄 사람들이 몰라봐서, 그래서 성만 그대로 놓고 이름을 '강신성일'로 개명을 한 것이죠. 


결국 강신성일로 개명을 한 후 약 20년의 기간이 흐른 지난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된 신성일은 당시 한나라당 총재 특보를 지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 당선 당시 아내 엄앵란에게 뽀뽀하는 신성일>


하지만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광고 로비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당 공천을 받지 못한 신성일은 결국 그 일로 뇌물수수죄로 구속 2년를 복역한 뒤 출소하게 됩니다. 


그런 일 때문에 신성일은 정치 인생에 대해서 많은 후회를 했다고도 하네요. 배우로서 이미 최고의 정점을 찍었기에, 그 경력에 권력이라는 날개 하나 더 다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었는데, 실제로 그 정치라는 세계를 접하고 보니 인생이 위축되며, 생리에도 안맞는 것 같다며 후회를 했다고 하죠.



그런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과의 결혼은 '졸혼'이라는 말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사실 신성일은 과거 공공연하게 자기 자서전에다가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김영애 아나운서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였다, 자신은 엄앵란과의 결혼 후에도 항상 여자가 있었다며 불륜을 얘기하곤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신성일과 엄앵란은 결혼 생활 55년 중 45년 이상을 거의 남처럼, 나중에는 실제로 떨어져서 따로 사는 생활을 했는데, 그걸 두고 신성일은 이혼이 아닌 졸혼, 다시 말해 결혼을 졸업하는 졸혼 생활을 했기에 엄앵란과의 관계가 유지가 되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죠. (이거 뭐 할리우드도 아니고 엄청나네요.)


<신성일 고 김영애 아나운서와 사진 (아래)>


그러 신성일은 엄앵란과 떨어져 살면서도 절대 이혼만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엄앵란 역시 자신과 살면서 신성일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이혼은 하지 않겠다는 말로 어떻게 보면 졸혼, 할리우드 식으로 치면 open marriage를 실천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아내 엄앵란 역시 2015년 경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죠. 당시 엄앵란이 수술을 받았을 때, 신성일이 병실에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해서 두 사람 졸혼 상태에서도 서로 애틋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는데요. 


1년 반 전에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신성일인데, 그새 이렇게 악화가 돼서 위중하다니 많이 걱정이 되네요. 아마 지금 3년 전 유방암 수술 때처럼 엄앵란 씨가 배우 신성일 옆을 지키고 있을텐데요. 많이 아프신 것은 아닌지, 어서 나아지셨으면 싶은데, 위중하다니 너무 안타깝네요. 


<신성일 엄앵란 결혼 사진>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 사이에는 슬하에 1남 2녀가 있다고 합니다. 아들은 이름이 강석현으로 배우 겸 연출가로 지난 2013년 47살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려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도 했답니다. 몇 달 전 배우 신성일이 부산 국제영화제에 데리고 나타났던 손녀딸이 아들의 딸이죠.



드라마 제작자이자 영화 배우인 강석현은 1986년 영화 '내일은 뭐할거니'로 데뷔했으며, 그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을 했지만, 신성일, 엄앵란이라는 후광을 벗기 위해 노력한 것 치고는 아주 잘 풀린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두 딸은 강경화, 강수화로, 큰 딸은 엄마 엄앵란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막내딸 강수화 씨는 미국인과 결혼해서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쯤 한국에 들어와 있겠네요. 


<신성일 엄앵란>


<엄앵란과 아들 강석현>


<신성일, 엄앵란 큰 딸 강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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