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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가수 박재란 남편과 이혼 후 딸 박성신 심장마비로 잃은 안타까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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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1일에 방영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58회의 주인공이 유명 원로가수 박재란과 대전에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배우 허영란으로 알려졌네요.


박재란이라는 이름, 아시나요?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큰 히트곡으로 1960년대를 평정했던 여가수입니다. 박재란의 찬란했던 가수생활과 결혼과 이혼, 역시 가수였던 막내 딸 박성신을 잃은 이야기까지, 원로가수 박재란에 관해 몇 가지 알아볼게요. 



 1  한국 대중문화 초창기를 풍미한 가수 박재란

박재란은 1938년에 경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맞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서울이 아닌 경성에서 태어난 것이죠. 올해로 여든한 살이 되셨네요. 박재란은 예명이고, 본명은 이영숙이라고 해요. 6녀 1남의 여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성장은 충남 천안에서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오르가니스트로서 음악을 하셨고, 1953년 불과 열여섯 살의 나이에 미8군 무대에서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엄청나게 유명한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무려 1900년생이었던 박태준의 눈에 띄어 문하생으로 들어갑니다.



 2  화려했던 가수 시절

박재란이라는 예명도 박태준이 지어준 것인데요. 박태준의 일종의 연습생으로 수련하던 박재란은 1957년 스무 살 나이에 음반을 내는 정식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데뷔하자 마자 낸 '뜰 아래 귀뚜라미' '럭키 모닝'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같은 곡이 연달아 히트를 하며 스타 가수에 등극합니다.


데뷔한 이듬해인 1958년에 박재란 최고의 히트곡이 탄생합니다. 호가 파인인 김동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시 아시나요?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하고 시작하는 시로,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지 모르겠네요^^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가 메가 히트를 치면서 현미, 한명숙과 더불어 국민 여가수로 트로이카에 등극합니다. 그 시절에도 가수로 성공하면 배우를, 배우로 성공하면 가수를 하는 일은 성행했나 봅니다. 박재란은 1959년에는 최민수의 아버지 최무룡과 김지미가 주연한 '비오는 날의 오후 3시'라는 영화로 배우 데뷔까지 이르게 된답니다.



 3  이혼과 딸 박성신을 잃은 아픔

박재란은 1960년대 어느 무렵에 결혼을 했던 것 같습니다. 13년 만에 이혼을 하고 1970년대 중반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고 하니 1960년대 초중반에 결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 박운양 씨와의 사이에 딸 두 명을 낳고 헤어지게 되죠.


아무리 대중문화인이라고는 하나 당시 이혼은 여자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고 하니, 그것이 그녀가 가수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힘든 이민길에 오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이민을 가서 비자 때문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등 산전수전을 겪으며 아이들을 보러 한국에 오고 했지만 남편의 반대로 오랫동안 딸들을 볼 수 없었다고 하죠.



그렇게 잊혀졌던 가수 박재란의 이름이 다시 수면에 떠오른 건 딸인 박성신 덕분이었습니다. 박성신은 1987년에는 MBC 대학가요제를, 1988년에는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가요제에서 '회상'과 '비오는 오후' 등을 불렀던 박성신은 1집 수록곡 '한번만 더'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유명 가수가 되었죠.


하지만 4년 전인 2014년에 박성신은 돌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앞세운 자식에 가슴이 찢어지지 않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박재란은 하루도 빠짐없이 박성신 생각을 하며, 하지만 이제는 박성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여생 동안 펼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밝은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듯 다시 활동의 기지개를 펴는 불타는 청춘 박재란의 이야기가 그려질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재미있게 시청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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