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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타

톈진에 역전패 4개국 우승 좌절 김연경 세계 배구선수 1위 상하이 연봉 도대체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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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는 못 살 것 같은 김연경이 졌습니다.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 같았는데 상하이 안방에서 2연패를 당하며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하고 말았네요.


김연경의 커리어 초창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톈진 리잉잉의 괴력 앞에서 김연경의 팀인 상하이가 브라이트 유베스트가 무릎을 꿇었는데요. 김연경의 내일을 믿으며 김연경 얘기 좀 해볼게요.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배구 스타 김연경은 1988년 2월 26일에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제 서른한 살이 되었지만, 내일이 와도 리즈시절을 찍을 것처럼 빛나게 활약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죠.


김연경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두 언니 중 배구 선수였던 큰 언니를 따라 배구에 입문했다고 하죠.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170센티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단신'이라 벤치 신세, 혹은 이런저런 포지션을 전전했다고 해요.


<한국 배구계의 메시 김연경 과거 사진>


어쩌면 여러 포지션을 경험했던 것이 오늘날의 스타 플레이어 김연경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키가 작았던 김연경은 고등학교 때 그야말로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 192센티미터까지 키가 자라며 고3 때 국가대표 배지를 차며 모든 프로 구단이 시즌 꼴찌를 노리며 눈독 들이는 유망주가 됩니다.


이때부터 포지션은 레프트 윙이 됐는데요. 그 영광의 꼴찌는 흥국생명, 2005년 시즌에 데뷔해서 V리그 우승을 이끌어버립니다. 그후 두 시즌을 더 흥국생명에서 우승을 맛보죠. 독보적! 이것이 김연경을 표현하는 말이고 MVP는 시즌마다 당연했습니다.



한국에서 4 시즌을 보낸 김연경에게 무대는 너무 좁았죠. 2009년에 일본 JT 마블러스로 이적하면서 각 나라 리그의 우승 수집이 시작됩니다.


일본 이적 후에도 이래저래 흥국생명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맘고생한 김연경이지만, 일본 리그 데뷔 첫 해에 득점왕을 차지하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남녀 통틀어 배구 최초의 한류 스타 탄생이었죠.


<JT 마블러스 일본 시절 김연경>


그후 JT 마블러스가 우승을 거둘 때마다 결정적 견인차 역할을 도맡던 김연경은 2001년 5월에 터키의 배구 명문 구단이 페네르바흐체에 입단하게 됩니다. 비행기 타고 한 시간 거리인 일본과는 다른 머나먼 곳이었죠.


이때도 임대 계약이었다고 하는데 흥국생명.. 흠... 일본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평을 들었던 김연경 선수, 일단 터키에서의 첫 시즌에서 팀을 무패로 레귤러 시즌 1위에 올려놓습니다. 무패입니다. 이거 실화? 공격, 수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요.



2013~2014 시즌 팀 우승을 이끌고 당연한 듯 MVP가 된 김연경, 챔피언 결정전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태극기 문양이 그려진 팔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팀 동료들도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에 뛰었다죠. 역시 형제의 나라, 터키.


'나 혼자 산다'에서 김연경의 터키 생활이 소개된 바 있고, 흥국생명 따위 말고 왠지 모르게 페네르바흐체가 김연경의 고향 팀인 것처럼만 느껴져서 김연경의 상하지 이적이 좀 낯설기도 했는데 김연경 갓김연경!


<상하이 김연경>


몹시 긍정적인 성격이라 인맥이 드넓으면서도 승부 앞에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김연경은 상하이 이적 첫 해에서도 팀을 또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놓았습니다. 상하이에서 받은 연봉은 세계 여자배구 선수 중 최고 수준인 16억원가량이라고 해요.


야구나 축구, 농구에 다음 인기 구기 종목인 배구에서 이 정도 연봉이 있었나 싶습니다. 참 대단한 식빵 언니, 결승전에서 졌습니다. 식빵언니 김연경이 또 얼마나 식빵을 외쳤을지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래도 당신에게는 다음 시즌이 있습니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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